언어, 이야기/Tageswort2016. 12. 11. 00:37

야나문 포스팅 에서

 

연애할 적, 지금의 남편에게 같이 살자라고 졸랐다는 이야기. “나는 아직 누나를 잘 모르는데요라는 말에, 다 괜찮다며 결혼하자고 졸랐다는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 행복을 위해서, 인생은 한 번 뿐이니까, 라는 이야기.

 

8개월 만에 만난 너에게 나는 대뜸 같이 살자고 했고, 적잖이 당황한 너의 표정. 나를 만나러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그 전신의 걸음걸이가 3년 전과 꼭 닮아 하는 말은 아니라고. 다만 그 걸음걸이가 삼년 전을 떠올려주길 바랐던 마음이 하는 말이라고.

 

같이 살자.”

너의 당황한 표정.

꼭 다시 만나, 꼭 같이 살자고 말하고 싶었다는 나의 말에 혼란스러워 했던 너. 고마운 말이라고 이내 미소 지었던 너. 예상치 못한 말이라 당황스럽지만 기분 좋은 말이라 말해줬던 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슨 말 하는지는 알 수 있다 말했던 너. 또 다시, 이내 피식-하던 웃음.

곧 떠날 준비를 하던 너에게 나는 팔 개월 만에 불쑥 나타나 끊임없이 졸랐다.

 

같이 살자.”

같이 살면 행복할 거야.”

너의 시간과 공간은 내가 꼭 확보해줄게.”

다만 그저, 같이 눈 뜨고, 같이 아침 햇살을 받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밤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잠 들자.”

 

나를 향한 원망이 가득한 눈. 그 눈으로 피식, 웃으며 아프다는 너의 말.

 

몇 주 뒤, 종로 5가에서 너는 나에게

여행 다녀오면 너에게 갈게.”

그럼 같이 사는 거냐 물으니, 웃으며 그건 모르겠다고 했던 너.

 

또 몇 주 뒤, 족발을 먹다가 너는 나에게

“7년 뒤에 결혼하자.”

그럼 같이 살아도 되겠냐 물으니,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겠지, 라고 했던 너.

왜 싫다던 결혼 이야기냐 했더니,

나에게 네가, 너에게 내가 짝꿍인 듯하여 결혼 해야겠다 생각했다는 너.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를 보낸 너.

 

다시 한 번 하나이길 바란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너.

그리고 나는 너에게, 삼년 동안 단 한 번도, 같이 살자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는 것.

 

같이 살다시피 했던 날들도, 단지 나를 위해 너의 공간을 내어줬었던 거라는 기억.

 

 

“7년 뒤에 결혼하자고 했어.” 라고 하니

젠장 정말 지랄들 하고 있네.” 라고 K는 욕을 했다.

 

일 년 만에 전화가 온 K에게, 나는 그와 함께 하고 싶다 말했더니, 의아해하며 K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같이 산다는 문제에 대해, 자신은 정말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웃으며 언젠가 한 번은 너에게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말했더니, 네가 말하길, ‘내가 원하는 건 너랑 같이 사는 건데라고 말하며 울었는걸.” K에게 기억나지 않냐 물었더니 그는 혀를 내둘렀다. 그럴 리가. 그는 웃으며 지금의 애인과 함께 지낸 날들에 대해 말했다. K,

그래서 지금은 같이 지내지 않아.” “그리고 같이 살고 싶지는 않아.” 라고 했다.

 

그리고 일 년 몇 개월 만에 만나 내 앞에 앉아서, 나에게 결혼하자 했던 몇 명의 이들을 욕하고 있었다. “왜 죄다 너랑 살자고 하는 거야.” “글쎄, 같이 살고 싶은 매력이 있나보지.” 라고 웃어 넘겼다. 글쎄. 누가 나랑 정말로 살고 싶어 했을까. ‘. 그런데 나는 왜 아무와도 같이 살고 있지 않을까, 나는. K에게 물어볼까 하다 관뒀다. 그는 정말로 화를 내고 있었다. 말로는, 결혼하기에는 이르다고, “결혼 말고 같이 사는 거라는 말에는, 그건 뭐, 라고 하면서 탐탁지 않은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러던 K는 자신에게 필요한 혼자만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함께 사는일로 인한 다툼들에 대해서도 약간 언급했다.

그런 그는 여전히

잠결에 누군가의 품을 찾는다. 없어서는 안 될, 놓쳐서는 안 될, 혹은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한 듯, 강렬하게 끌어안는다.

그는

하루를 눈꺼풀 아래 덮어두는 잠의 시간 동안, ‘누군가를 끌어안고 있어야만 한다. 아마도.

 

우리는 구년 차에 접어들었고,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한 채 깨어난 아침, 침대 곁에 일어서서 아직 잠들어 있는 K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얼마나 자주 저 공허한 팔에서 잠들고 깨어날까.

강렬하고도 강한 힘의 강도만큼 배로 공허한 품.

아아, 담배가 필요한 아침.

내가 너를 버리고 네가 나를 버리고 그가 너를 버리고 네가 나를 그나 나를 버린 아침. 서로가 서로를 버리는 아침.

 

같이 산다는 것.

나에게는 그저 소소하게 먹을 걸 만들어 먹고, 아침 커피를 2인분을 내리는 것. 혼자이다가도 늦은 저녁이 되면 누군가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 혹은 집에 갔을 때 누군가가 안아준다는 것. 수많은 싸움과 수많을 싸움을 뒤로한 채, 잠시만 행복하자고 하는 것. 아침햇살에 극도로 행복해보자고 하는 것. 죽음과 같은 정적과 밤을 잠시만 잊어보자고 하는 것. 잠깐씩 들리는 죽음에 손잡고 함께하자 하는 것. 다만

단지 그게 너여야 했다는 것.

같이 산다는 것, 행복을 위해서, 한 번 뿐인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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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h.ro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