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이야기/Tageswort2018. 9. 22. 00:08


그러니까
겨우 오랜만에
꿈없이 잠들었다.
어제 여러 번 울뻔한 기분 덕인지도 몰라
어제의 공연에서 너무 많은 꿈을 얘기해 그런지도 몰라
몽중인은 내가 아니라 거기에 있었고
눈을 가만히 뜨고는 안도했다
비가 오고
먼 도로 위 소리와
적당한 습도의 냄새
빗방울이 창문을 치고
커튼이 폐가 부풀듯 숨쉬는 소리
한낮의 푸른 빛과
비현실적인
고요
차나 마실까- 생각하던 순간에 본 편지
오늘 온
일상의 잊힌 목소리들을 얘기하는 편지
그 후에 내 늦은 아침은
더 적막해졌고
커피를 마실까
에스프레소를 떠올리면
나는 터키커피가 마시고싶어져서
터키커피에는
흙냄새가 난다
대지를 같이 들이쉬는 기분이 든다
다 마셔 가라 앉은 반이나 되는 커피가루를 잔 채 엎으면
그날의 운세가 나온다는 터키커피는
아무리 단번에 뒤집어봐도 읽을 수가 없고
나는
커피는 마시지도 못하면서
작은 포트에 커피만드는 법을 배워 길고 가는 몸으로 그 특유의 어설픈 작은 동작들로 팔팔 끓여낸 커피를 조금씩 맛보던 보라 생각이 잠시 난다.
그는 오롯이 나를 위한 커피기구들을 내 입국전까지 모두 구비하고 뿌듯해했고, 늘 나에게 아무말 않고 친절했다.
그랬나? 정말?
그 자리, 섬세하게 비우고 채워놓은 가지런한 기구들의 자리.
.
들려오는 소음들. 아침. 숨이 들어선 폐의 살가죽처럼 부푼 커튼.
잊힌 사물의 목소리들.
적막 고요의 소리
이스탄불에 더 오래 머물렀다면 완성했을지 모를 이야기의 첫머리는 늘 이스탄불 첫 아침의 갈매기 소리다.
낯선 나라의 낯선 방에서
오랜 비행 끝에 만난 낯선 사람과의 밤
아마 뽀뽀도 하지 않고도 다정하게 잠든 첫날
턴테이블 앞 바닥에 쭈그려 앉은 내 옆에 따라 앉고는
안아봐도 돼? 라고 작게 물어봤던 것이 전부였던 밤
깊게 잠든 꿈에서 반쯤 깬 꿈결
웃음소리
이른 아침 푸른 빛
살랑거리는 커튼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큰 소리를 냈고
깔깔깔깔
웃음소리
그 소리에 놀란 꿈결
나는 반쯤 눈을 떴고
푸른 빛
숨쉬는 커튼
깔깔깔깔
너무 웃겨 쿡쿡거렸고
내 웃음에 눈뜬 보라에게 물었다 무슨소리야?
갈매기들
울음소리.
깔깔깔깔
쿡쿡
나는 너무 웃겨서 잠이 덜깬채로 계속 웃었다
어리둥절하던 보라도 같이 웃었다.
마치
오래된 연극무대 희극 공연에서
만석 관객이 웃는 듯한 소리.
잔향
오랜 잔향
호프구조라고 하긴 뭐하지만
창문 너머에 같은 집 다른 방 창문이 보이는 건물의 구조는
네모난 구멍을 가진 구조
그 특유의 빛
과 소음
그리고 나간 거실 창밖에 보이는
둥근 탑과
거리의 과일들
모든 사물의 존재의 소리들과
가끔 보라가 틀어주던 샹송들.
그리고 길어진 만남에서 수화기 너머로
그는 종종 책을 읽어주었다.
터키어나 프랑스어로 된 이야기, 말들 문장들 단어들
알아들을 수 없는
가까운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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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h.ro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