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똑똑한 것은 아니란 걸 대부분 잘 알겠지만, 책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은 책을 볼 줄 아는 사람일 거라는 가정 또한 어지간해서는 맞지 않는다. ‘책을 즐긴다’와 ‘많이 본다’ 역시 다른 개념이고, ‘책을 많이 본다’와 ‘책을 잘 볼 줄 안다’는 말-더 나아가 ‘책을 선별할 줄 안다’는 말-은 완전히 어긋나는 말이 되기도 한다. 본다, 읽다, 즐긴다, 탐미하다, 해석하다, 라는 말은 서로 모두 다르고, 같은 단어 안에서도 제각기 다층적 의미를 갖는다. 일반 취미로의 독서와 학문으로서의 문학은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 독서로의 지향에 있어서는 같아야 하지만 사실적으로는) 다르다. 요컨대, ‘문학을 본다’는 것은 한 층위의 문장이 아니다. (이러한 몰이해로 인해 학문 분과로서의 문학에 대한 가벼운 오해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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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종종 가벼운 충격들을 맞닥뜨린다. 한국 사회, 혹은 인간 사회에서 ‘지식’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인가. ‘지식’은 관계망 안에서 어떤 고급 권력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고급 권력이라는 특징의 일정 부분에 있어 개인의 매력 증진을 위한 수단으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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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독을 통해 습득된 지식을 아주 고급 의복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값비싸고 희귀한 의복은 상대에 따라 권력을 생성하기도 하고, 위압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의복만으로 그 사람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명하다는 것들을 덕지덕지 걸치고 껴입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멋져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제 것도 없고 심지도 없으면 온전히 꽝이다. 그리고 그런 꽝들은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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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령, 남녀평등에 관한 논의들을 멋진 자켓으로 걸치고는 앞서가는 사람이 여자라는 이유로 뒤통수를 후려친다거나, 합리적 인간을 주장하면서 알지 못하는 자를 그의 외관만으로 영웅으로 받드는 일은 매우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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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다독왕들 중에 난독증 환자들이 많다. 타인이 발화하는 텍스트보다 문자로 적힌 텍스트에 더 익숙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많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실제 인간과의 관계보다 작품 내의 관계에 더 잘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타인이 발화하는 텍스트를 자기가 보고 싶은 내용의 텍스트로 바꿔 듣거나 끼워 맞추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책을 볼 때 텍스트의 컨텍스트는 전혀 읽지 못하거나 배제시키면서 단순 문장만을 탐독하는 행위에서 발생하는 것들이 있다. 대다수의 탐미주의자들이 이 경우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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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증상은 무언가를 직접 하거나, 만드는 것, 혹은 스스로 생각하고 쓰는 것보다 ‘보는’ 것으로부터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충족하는 사람의 경우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독의난독 난독증환자들
고유명사의폭력
사진) Grandville, 'Bookworm', G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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