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이야기/Tageswort2017. 5. 15. 17:17

당신이 보고 있는 것.

, 아주 먼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한 먼지들.

그 먼지들이 모여 그리움이 된 날.

2016. 0-. 0-. 1:11

저는 그 시간에 온전히 당신의

발길 너머 언저리에 꽃이 되고

싶습니다.

그 꽃은 시들지 않을 만큼

그 사이 간절했습니다.

2016. 0-. 0-.

 

 

 

 

 

 


<흐리고 흩뿌리는 날이어서>

 

우연히 랑의 공간에 들어선 날, 어쩌다 함께 술을 마셨고 테이블 위에 놓인 첫 와인병이 반쯤 비워졌을 때 공간 모서리 스피커에서 Para Nosotros가 흘러나왔다. 술도 마셨겠다 순간 신경이 요동쳐서 그에게 곡 제목을 물었고 그는 아주 성의 없게 연주자 이름을 공중에 흩뿌렸다. 그날 이후 나의 메모장에는 호저 다비송?’이라는 뻘쭘한 글자만 적혀있었다. 더 조심스럽게 물을 걸 그랬나 후회마저 남은 채 시간은 흘렀다. 후에 왜 그렇게 성의 없이 대답해줬냐 물었더니, 그는 일부러 그랬다고 말했다. 다음을 기약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이었으나 그대로 믿기에는, 그 짧은 시간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 믿기에는 어려웠다. 다만,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제일의 매력을 쉽게 놓치지 않고자 하는 방어기재가 순간 작동한 게 아니었을까. 너무 쉽게 시시해질까봐. 너무 아름다운 것이, 너무 시시한 것이 될까봐. 그만큼 그날의 그는 예리했고, 또 그만큼 무디었고, 음악은 요동쳤고, 그 요동은 누구의 마음이라도 사로잡을 수 있는 박동이었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 시시해지거나 쉬워지는 것을 가장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부터 내 메일함에는 그가 보내준 음악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꽤 많은 음악들과, 음악보다 먼저 나에게 왔던 그의 언어들은 차츰 무디어지고 쉬운 것이 되어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는 그 시간을 경멸했다. 매일 저녁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괴로움에 찬 그의 고성이 들려왔다.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단단하게 굳어버리기만 한 지난날의 무거운 생채기들과, 그를 둘러싼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들에 대한 괴로움, 그가 온 몸을 써서 매달리고 있는 어떠한 아름다움 한 줌이 사라져가기에 그를 찌르는 고통에 그는 매일 저녁 소리를 질렀다. 그의 육체는 늙은 코끼리의 걸음만큼 무거웠고, 고름이 안으로 새는 고목처럼 말라갔다.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었다. 그는 그가 내게 보낼 수 있었던 언어들을 위해, 그 이야기들이 소멸되지 않기 위해 내게 떠나 달라 부탁했다. 어느덧 다시는 볼 일이 없어진 어느 날이 되었고, 그에게서 (당시로서는) 마지막 인사 메일이 날라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호저 다비송인지 로저 다비송인지 다비손인지 당신이 매번 공중에 날려버린 그 이름의 음악을 보내달라 요구했고 그는 애정을 듬뿍 담아 데이비슨(데이비슨인지 다비송인지)의 앨범 전곡과 그의 시그니쳐 음악을 보내주었다.

짧게나마 함께했던 때에 가끔씩 그 공간에서 데이비슨의 음악이 나오면 나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빙글빙글 춤을 추었는데, 때마다 조금은 흐리고 비가 흩날렸던 기억이다. ‘길 위의 그 공간의 주요 트랙들은 기억에 꽤 많이 남아있는데, Roger Davidson의 이 앨범은 유독 마치 어떤 장면을 위한 사운드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 음악에 한해 그 공간은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감싸 안아진 하나의 연출된 공간처럼 영원한 이미지로 남는다. 그곳이야 언제나 어느 음악이나 멋졌지만.

사람은 아니더라도 비 오는 날의 고궁 옆길과 머리 벗겨진 플라타너스들, 백벽의 고요함과 완벽에 가까운 음향은, 그리고 미처 알지 못한 음악들은 안타깝게도 자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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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h.ro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