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젤다. 오랜만입니다.
이제 더는 말 붙일 곳이 없어 오랜만에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참 많은 편지들을 썼습니다. 참 많은 말들을 받았었죠. 정작 해야 하는 말들은 오가지 못한 채로, 그땐 어쩔 수 없이 그대 이름을 그렇게 많이도 불렀습니다. 부름이 오지 않았으나 먼저 부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네요. 거긴 무탈한가요.
꽤 오랜 시간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가끔, 아주 가끔 오는 말들을 남몰래 숨긴 것이 전부이네요. 언제 그렇게 많은 말들을 주고 받았는지 이제는 정말 까마득합니다. 지난 겨울은 아주 오래 전 겨울 같아 놀라웠고, 요즘은 가끔 오지도 않은 계절이 코 끝을 스쳐갑니다. 나는 얼마나 더 많은 과거를 새롭게 느끼며 살아가게 될까요.
젤다. 말을 잊고 사는 꽤 오래 지속되고있는 이 시간, 나는 아마도 내 살결에 붙은 모두를 떼어내는 중인가 봅니다. 말을 잃는다는 것이, 사람을 잃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나 봅니다. 나는 나의 모든 이니셜들을 버렸습니다. 그것들을 견디기 어렵다는 이유로요. 나는 그것에 참으로 다행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것들을 꾸역꾸역 안고 있었다면, 나는 정말이지 대상없는 이름을 잔뜩 가진 욕심쟁이였겠죠. 나 하나 사랑하지 못하는 기만 가득한 사람이었겠죠. 다행히 나는 그 모든 아름다운 추억보다 지금 뛰는 심장이 더 소중합니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 위해 그랬다는 걸 그대는 알아주겠죠. 그 오랜시간 그대 이름을 부르지 않은 이유와 같은 마음에서 말입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언제나 늦네요. 몇년을 살을 에이며 오지 않았던 말이 지난 가을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늦은 걸까요. 나는 시덥지 않은 욕으로 답했습니다. 참 건조하게 눈물이 나더랍니다. 그 허무한 마음에 말입니다. 내가 그대에게 그렇게 미안하다 부르짖던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먼 옛날입니다. 그로부터 보상받은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에는 그때의 나도, 그때의 그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토록 소중했던 것이었기에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끔은 어느 날의 소음과 날씨가 그립습니다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을 탓하다, 그냥 누구에게도 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다친 마음을 안고 찾았던 그의 마음과 말들을 상상하며 그 말들을 이젠 내가 나에게 해줍니다. 참으로. 생산적이네요.
일년 전쯤이었을까, 이년 전쯤이었을까 그가 내 눈에서 사라진 반짝임에 대해 안부를 물었었죠.
그때는 참 작아져가는 불꽃이었는데, 지금은 보다 가라앉은 잿더미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어느날 무엇 때문에 혹은 누군가 덕분에 다시 불이 일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만족합니다. 나는 계속 넘치게 습한 잿빛이고 싶습니다.
나의 마지막이 회색 우산을 쓴 모습이길 바랍니다.
언제나 나의 세상은 반쯤 비가 옵니다. 흐린 하늘. 지난 밤엔 이상한 꿈을 많이도 꿨습니다.
젖은 계절을 건너며 손등에 올렸던 물고기들을 노래하던 때의 친구들은 지금 보이지 않습니다.
난 그들의 안부를 묻지 않습니다. 그들도 나의 안부를 묻지 않겠죠. 우린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아니었으니까. 거기엔, 언어만 있었습니다. 글자들만요.
젤다. 가끔 안부를 물어주는 것이 어디까지가 마음 따스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의 의미가 순간순간 참 많이도 바뀝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 좋고, 사람이 어려운가 봅니다.
요즘 심정은 말입니다. 가장 살이 없는 어깨와 쇄골 끝 사이의 어느 부분을 툭하고 뚫어서 말입니다, 아주 독한, 길다란 실타래를 몸에서 뽑아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건 미움일까요 상처일까요, 후회에 가까운 어리석음일까요, 아니면 여전히 탁한 욕심들일까요.
젤다. 그 견고하던 먼 나의 집은 이제 어디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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