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혼잡하다. 그렇지 않으면, , 혼잡하다. 과거는 바로 그 지점에서 흐트러져서 늘 순간의 형태를 잃고 말았다. 흐트러짐의 연속, 그 가녀린 연장선에 희미하게 단절된 현재가 있다. 혹은, 침입한다. 바로 이전까지의 순간도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그 불투명함 탓에 현재와 완전히, 단절된다. 순간이란 말로 다시 한 번 단절된다. 오늘, 현재라는 순간까지 맑지 않은 어느 날, 그러니까, 꿈보다 현실이 더 꿈만 같은 날. 더 어둡고, 침침하고, 젖은 냄새가 나고, 언제라도 비가 내린다 한들 이상하지 않은 그런 날. 매 순간 흐릿한 기억에 현재를 덧대며 꿈속처럼 어리숙하게, 커피를 마신다.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끊고 나갈 준비를 한다. 이런 날은 무얼 해도 어색하다. 매일 몇 번씩 들락거리는 화장실조차 고요하고 어색하다. 눈과 귀로, 혹은 두 발로 들어오는 감각들보다, 눈 너머의 시선이 더 익숙한 날.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익숙했던 그를 만나러 별 단장 아닌 단장을 했다. 과거에 가졌던 익숙함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내가 편승한 시간은 늘 예기치 않게 빠르거나, 느리다. 무임승차한 듯 언제나 나는 내 두 발이 순간에 닿아있는지 자신이 없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했었다. 이미 늦었어. 혹은, 역시나 때가 아니야. 혼자 걸을 때마다 느끼지만, 걸음마를 다시 배웠으면 좋겠다.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 발을 딛고 다른 발을 떨궈놓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고 긴장된다. 모든 것이 그렇다. 그랬다.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유아기로 돌아가 다시 만져보고 싶다 생각한다. 절단되지 못한 과거에서 늘 무거운 비틀거림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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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h.roze